기부스토리

Donation Story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 있어요. 저는 그저 잠시 맡은 청지기입니다.”
  • 발전기금팀
  • 202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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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숭실대학교를 재건하는 데 앞장선 한경직 목사님께 숭실은 교회 이상의 그 무엇이었고, 제게도 그렇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법
한경직기념관 건립기금 등
누적 출연 40여억 원

숭덕 김덕윤. 숭실에서 자주 듣는 이름이다.
숭덕경상관, 김덕윤예배실, 김덕윤장학회… 곳곳에서 그 이름을 만난다.
김덕윤 권사는 숭실의 동문은 아니다.
숭실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이름이 숭실에 널리 알려지고 많은 숭실인의 존경을 받는 것은 오랜 세월 숭실에 헌신한 특별한 사랑 때문이다.

숭실의 가치
김덕윤 권사와 숭실의 인연은 한경직 목사로부터 시작됐다.
“서울에 숭실대학교를 재건하는 데 앞장선 한경직 목사님에게 숭실은 교회 이상의 그 무엇이었고 제게도 그렇습니다.”
한경직 목사 곁에서 한길을 걸었던 김덕윤 권사는 한경직기념관을 건립할 때 20년을 살아온 집을 팔아 20억 원을 선뜻 헌금했다. 무엇을 해도 아깝지 않은 심정이었다. 학교는 한경직기념관 소예배실을 ‘숭덕 김덕윤예배실’로 헌정하여 그뜻을 기리고 있다. 거액의 발전기금을 수차례 기증해 온 김덕윤 권사는 1억 원 이상 기부자들이 모인 숭실아너스클럽 회원이다. 2015년부터는 가족들이 뜻을 모아 만든 ‘김덕윤장학회’를 통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기부의 일상을 살다
1946년 열일곱 살에 평양에서 월남해 고생고생하며 패션사업을 일궜던 김덕윤 권사는 “살아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하며 피땀 흘려 번 돈과 시간을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사용했다. 나눔과 봉사는 그녀의 오래된 일상이다.
1970년경부터 시작된 영락보린원 후원은 40년을 훌쩍 넘었고, 1968년 통닭과 카네이션, 떡을 준비해 시작한 경로원 섬김도 지금껏 계속하고 있다.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 있어요. 저는 그저 잠시 맡은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이면 주저 없이 드립니다.”
그녀를 본받아 자녀손들도 믿음의 유산을 이어 가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길
“숭실대에 뜻깊은 기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제 마음에 항상 목자로 살아 계십니다. 어떻게 영락교회만의 목회자겠어요. 큰 분이었어요. 한국 교회의 자랑이죠. 그분을 통해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글썽여진다는 김덕윤 권사는 그의 곁에서 일할 때 감사와 기쁨이 넘쳤다. 사람을 따라갈 때 실망하고 낙담하는 경우가 있지만 한경직 목사님과는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믿음의 본을 보는 것은 동역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이었다. 숭실을 사랑한 한경직 목사를 따라 나눔과 헌신을 그대로 보여준 김덕윤 권사. 그녀의 나눔을 통해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섬기는 법을 또렷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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